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지겨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 대체 뭘까요? 저는 공부하지 않으면, 원시인 같은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공부해야 하는 이유, 원시인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과거 원시인들은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욕망에 ‘너무나’ 충실했고, 감정에 ‘너무나’ 충실했다.
– 배가 고프면 마구 먹는다.
– 자고 싶으면 원 없이 잔다.
– 그쪽(?) 욕구가 몰려 오면 지나가는 누군가를 덮쳐서 욕구를 해소한다.
– 화가 나면 날 화나게 한 사람을 때린다.
– 힘들거나 슬플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한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
“어? 원시인만의 이야기가 아닌데? 현대에도 저런 사람들이 많은데?”
맞아요. 현대에도 많습니다. 욕망에 ‘너무나’ 충실하고, 감정에 ‘너무나’ 충실한 사람들 말입니다.
– (배가 고프면 마구 먹는다→) 배가 고플 때마다 마구 먹어서 비만 문제가 생겼다.
– (자고 싶으면 원 없이 잔다→) 맨날 잠만 자다 보니 활동량이 적어지고 엔도르핀 수치가 감소해 우울증 문제를 겪게 됐다.
– (그쪽(?) 욕구가 몰려 오면 지나가는 누군가를 덮쳐서 욕구를 해소한다→) 욕구를 참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갔다.
– (화가 나면 날 화나게 한 상대방을 때린다→) 도로 위에서 운전하다가 생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해코지 했다.
– (내가 힘들거나 슬프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 너무 힘들고 슬퍼서 나만의 공간으로 깊숙히 숨어버렸다.
저는 현대인들이 겪는 이런 ‘원시인 같은’ 문제들의 원인이 제때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제가 얘기하고 싶은 ‘공부’는 단지 학창 시절만의 공부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에 걸쳐 하게 되는 공부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식사예절을 배우고,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것,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화가 나도 남을 때리지 않아야 한다.’라는 것을 부모님으로부터 배우는 것, 역시 공부입니다.
나이가 지긋이 든 후 ‘나이가 들면서 점점 판단력이 흐려지고 본인만 생각하는 쪽으로 사고가 바뀔 때, 이러한 사고에 지배당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 역시 공부, (젊을 때부터 배우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배우지 못했던) ‘춤추는 법’을 늦게나마 배우는 것도 공부입니다.
꼭 책상에 앉아 책을 피고 눈을 부릅 뜬 채로 텍스트에 집중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전에서도 ‘공부하다’를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학문의 영역만을 공부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거죠.
갓난아기가 걸음마를 익혀가는 과정도 ‘기술을 익히는 과정’, 즉 공부이고, 나이가 많이 드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분이 침대에서 내려갈 때 다치지 않고 안전히 내려가는 법을 익히는 것도 ‘기술을 익혀가는 과정’,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공부는 평생에 걸쳐 겪는 과정이고, 공부의 종류 또한 다양합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공부의 본질에는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성숙한 현대인의 삶을 살게 한다’라는 목적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걷는 법을 배워서 아는 사람, 식사 예절을 배워서 아는 사람, 화가 나도 남을 때리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서 아는 사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서 아는 사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본인만 생각하고 사고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워서 아는 사람, 나이가 들어서라도 춤을 배워서 멋드러지게 춤을 출 수 있는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을 성숙한 현대인으로 여깁니다.
욕망과 감정에 충실한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현대인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공부의 최종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의 뇌와 이성의 뇌, 그리고 전두엽
우리 인간의 뇌는 감정의 뇌(우뇌)와 이성의 뇌(좌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어느 쪽 뇌가 더 우세한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행동이 감정적일지, 이성적일지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때, 이성의 뇌가 우세하도록 통제하는 게 뇌의 전두엽인데, 이 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사람은 감정의 뇌의 지배를 받아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원시인 같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반대로, 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한 사람은 이성의 뇌의 지배를 받아 이성적이고 절제력 있는 사람(정상적인 현대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굉장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전두엽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들은 전두엽을 십분 활용하여, 눈 앞에 놓인 원시인적 욕구(낮은 수준의 욕구)를 쫓지 않을 수 있었고,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작은 만족보다는, 오랜 기간 참고 견뎌내야만 맞볼 수 있는 큰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왔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전두엽이 정말 중요하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자, 이제 여기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전두엽을 발달시켜 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공부’입니다.

– (배가 고프면 마구 먹는다→ 배가 고플 때마다 마구 먹어서 비만 문제가 생겼다.)
Stop! 배가 고플 때마다 먹으면 돼지가 되는 꼴을 면치 못한다고 배웠어. 먹는 욕심을 잘 조절했더니 건강하게 되서 일상이 너무나 활기차게 됐어.
– (자고 싶으면 원 없이 잔다→)맨날 잠만 자다 보니 활동량이 적어지고 엔도르핀 수치가 감소해 우울증 문제를 겪게 됐다.)
Stop! 적정 시간을 자야 몸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배웠어. 적정 시간 수면을 실천하다 보니 요즘 컨디션이 너무 좋아.
– (그쪽(?) 욕구가 몰려 오면 지나가는 누군가를 덮쳐서 욕구를 해소한다→ 욕구를 참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갔다.)
Stop! 가끔 그쪽 욕구가 강하게 올라올 때가 있지만 욕구대로 사고를 쳐버리면 감옥에 가고 인생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 나는 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야.
– (화가 나면 날 화나게 한 상대방을 때린다→ 도로 위에서 운전하다가 생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해코지 했다.)
Stop! 화가 날 때 화를 풀기 위해 하고싶은 대로 다 하면 결국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안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을 배웠어. 오늘도 나는 참는다.
– (내가 힘들거나 슬프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 너무 힘들고 슬퍼서 나만의 공간으로 깊숙히 숨어버렸다.)
Stop! 나만의 공간으로 파고들어가면 제일 손해보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배웠어. 힘들고 슬프더라도 잘 이겨내고 사람들과 계속 만나다 보니까 오히려 덜 힘들어졌어. 이 경험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다시 꺼내서 활용해야겠어.
순간적이고 작은 만족은 잠깐 나를 행복하게 하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나를 무기력하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 눈 앞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존재를 거부하고 참아내면서 더 크고 높은 만족을 향해 가는 것. 이것을 배우는 인생의 모든 과정이 저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공의 핵심인 전두엽을 발달시키는 방법입니다. (관련 추천 영상 링크)
이제, 단순히 ‘공부’를 학창시절에만 하는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멈춥시다. 공부는 평생에 걸친 ‘원시인이 아닌 높은 수준의 고귀한 현대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학창시절의 공부 역시 의미 있는 공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제 글이 도움이 됐다면 오늘 찾아주신 이 사이트, 즐겨찾기 해두시고 자주 찾아오세요. 계속 읽다보면 생각이 한뼘 자라고 성장해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겁니다. 아, 물론 저도요. 계속 글을 쓰다보면 저 역시 성장해 있을 거라 믿습니다.
<꼭 읽어봐야 할 글>
벤저민 프랭클린 명언, 한국 교육제도와 공부에 던지는 시사점
도파민 사용법, 이렇게만 쓰면 그저 그런 인생이 되버립니다.
호르몬 종류와 역할 – 도파민 “여기에 집중해!” 강요하는 무서운 녀석